첫사랑을 다시 만나도 잘 안될수 밖에 없는 이유첫사랑을 다시 만나도 잘 안될수 밖에 없는 이유

Posted at 2020. 2. 28. 09:30 | Posted in 연애 연재글/연애분석실

첫사랑을 다시 만나도 잘 안될수 밖에 없는 이유

남들은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출근이란걸 하지 않는 내 입장에서 주말은 꽤 곤란하다. 평일엔 대개 한산해서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쓸수 있지만 주말엔 어딜가든 사람들로 북적해서 마음 편히 있을 만한 곳을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대개 주말엔 남들 다 밖에 돌아다닐때 홀로 침대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시간을 때우곤 한다. 그런데 그날은 뜬금없이 꼭 조용한 곳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어졌다. 하필 주말에 책을 읽고 글을 쓸만한 조용한 곳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곳이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한참을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한 끝에 떠오른 곳은 이미 오래전에 졸업을 한 대학교 도서관이었다. 확실히 탁월한 선택이었다. 집에서도 가깝고 막 시험기간이 끝난 시점이라 한산했고, 오랜만의 모교 방문이라 추억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덕분에 기분좋게 책도 좀 읽고 두어개 정도의 글도 썼다. 

 

오후 8시쯤 식사를 할겸 도서관에서 나와 중문앞을 걸었다. 사실 목적지는 애초에 집을 나서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 옛날 나의 인생 짬뽕을 만나게해준 중국집이다. 정말 오랜만의 방문이라 조금 불안하기도 했지만 중국집은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옛날 나의 인생 짬뽕은 정말 파격적이었다. 일반 중국집에서 쓰는 짬뽕그릇보다는 조금 더 깊은 그릇에 대체 어떻게 쌓았나 싶을 정도로 홍합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처음엔 넘쳐나는 홍합살과 국물을 먹고 마시다가 본격적으로 이런저런 해물들과 싱싱한 야채를 곁들여가며 면발을 흡입하면 정말이지 '최고'라는 말 말고는 나오지 않았다. 


특히 해물도 해물이지만 양배추의 아삭이는 식감과 단맛이 일품이었는데 하여간 누가 먹어도 인생 짬뽕이라며 엄지를 치켜올릴 맛이었다. 나는 주인 아주머니께 왕년에 여기서 매일 밥을 먹고 술을 마셨었다며 너스레를 떨었고 주인 아주머니는 반갑다며 그때보다 더 맛있어졌으니 기대하라고 말씀해주셨다. 


하지만 내 앞에 나온 짬뽕은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그릇도 그때의 그릇이 아니고 (심지어 다른 상호가 적혀있었다) 쏟아질까 불안했던 홍합은 보이지 않았다. 국물의 빛깔은 라면의 느낌이었고 고명의 양을 떠나 종류도 많이 빈약해졌다.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오랜만에 찾아온 단골이 반가우셨는지 옆테이블에 앉아 이곳의 짬뽕이 이렇게 업그레이드된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하지만 죄송스럽게도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내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솔직히 맛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꽤 괜찮은 짬뽕라면의 느낌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허망한 마음에 다시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길에 도대체 어디부터 잘못된걸까 생각을 해봤다. 그때보다 물가가 많이 올라서 그때처럼 좋은 재료를 많이 쓸 수 없게된걸까? 아니면 맛있는 짬뽕하나 먹어보겠다고 혼자 공주까지 차를 끌고갔었던 나의 덕력때문에 상대적으로 맛이 없게 느껴진걸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인생짬뽕이라고 생각했던게 사실은 그저 미화된 나의 추억이었을 뿐이 었던걸까? 


아마 그 모든 것들이 조금씩 영향을 미쳤을거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원인은 내가 옛 기억을 추억하며 내 멋대로 시간을 냉동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시간은 당연히 나의 소망과는 별개로 흘러가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은 변한다. 물가가 변하고, 내 입맛도 변하고, 잘 팔리는 맛도 변한다. 잘못된건 없다. 오히려 각자 자신의 상황에 맞게 잘 변화해왔다. 다만 지금은 잘 맞지 않을 뿐인거다. 


몇 해전 여름, 차를 몰고 남산을 넘어가고 있을때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야, 너 그때 걔랑 헤어진거 후회 안하냐?" 그 녀석이 말하는 '걔'는 내가 처음으로 결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여자친구다. 


너무 오래만나다보니 서로, 그리고 서로의 지인들 모두 때가되면 둘이 결혼을 하겠거니 했다. 하지만 결국엔 지금 기준으로는 시시한 이유로 헤어졌다. 그 후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항상 내가 실수했다고 그 때를 후회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몇 해전 여름, 내게 그녀와 헤어진걸 후회하냐고 묻는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치~ 후회했지~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잘 헤어졌던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는 친구에게 따로 답을 하지는 않았다. 사실 말을 안한게 아니라 못했다. 분명 그때 헤어진게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렇게 생각을 하게된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몰랐다. 


아마 내가 그때 "생각해보니 그녀와 잘 헤어진것 같아"고 말을 했던건 그녀와 헤어지던 그 때는 몰랐지만 지나고보니 그녀와 내가 바라보는 방향이 달랐다는걸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일거다. 그땐 몰랐지만 그때의 그 시시한 이유가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의 사이를 벌려놓고 결국엔 서로를 진심으로 미워하게 만들고 서로 상대방 때문에 불행해졌다고 말을 하게 됐을거란걸 깨달은거다.


시간은 내 소망대로 흐르지 않고 자연히 모든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 소망과는 전혀 상관없이 변화한다. 우리가 추억하는 첫사랑은 그 때 그 곳에서만 존재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나와 상대의 머릿속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할 뿐이다.


재회플랜&사례집 '이번 연애는 처음이라' 책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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