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왜 좋아하는지 꼼꼼히 따져봐야하는 이유상대를 왜 좋아하는지 꼼꼼히 따져봐야하는 이유

Posted at 2020. 2. 26. 09:30 | Posted in 연애 연재글/연애분석실

상대를 왜 좋아하는지 꼼꼼히 따져봐야하는 이유


나는 매운것을 잘먹지만 즐기는 편은 아니다. 남들은 매운걸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데 나는 매운걸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리긴 커녕 짜증만 치밀어 오른다. (화낼데가 없어서 매운걸 먹으며 화내고 스트레스를 푸는걸까?) 그래서 대한민국을 휩쓴 마라열풍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남의 나라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쩌다보니 집에 마라소스를 상비하고 있는 심각한 마라중독자가 되었다. 


남들은 얼큰한 매운맛에 먹는다고 하던데 맵고 얼큰한것만 따지자면 차라리 짬뽕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오묘한 느낌에 하루가 멀다하고 라공방을 찾는다. 


그날도 별 생각없이 라공방에 들어가 청경채, 새우완자, 포두부, 푸주, 배추, 느타리버섯, 팽이버섯, 옥수수면, 분모자 당면, 소고기, 양고기를 나만의 레시피에 맞게 신중히 눈대중으로 계량을 하고 계산을 마쳤다. 그리고 습관처럼 셀프바로 몸을 틀어 물잔을 채우고 밥을 퍼담고 있는데 옆에 처음보는 소스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원래 있었지만 그동안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산초기름, 고추기름, 땅콩소스, 설탕? 나는 호기심에 조금씩 소스그릇에 담아왔고, 잘익은 양고기와 소고기 그리고 청경채를 한 젓가락에 집어 소스에 푹 찍어 입에 넣었다. 그 순간이 매운것을 즐기지 않는 내가 마라탕에 미치게된 이유를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산초' 그게 날 미치게 했었던거다. 혀를 포함한 입안 전체를 얼얼하게 마비시키고 묘하게 멘톨처럼 시원하고 청량한 기분을 들게하는 산초가 난 미치도록 좋았다. 


내가 무엇인가를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는건 여러모로 유용한 일이다. 내가 뭔가에 미치게 된 이유를 명확하게 알게되면 내가 그동안 몰랐던 나의 성향을 깨달을 수도 있고, 상황에 맞게 조절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고, 무엇보다 막연히 애매하고 답답했던 마음이 아주 명확하고 시원해진다. 


개인적으로 평탄한 연애를 선호해서 대개는 큰 기복없는 연애를 했었는데 딱! 한번 모든 친구들이 미쳤냐며 뜯어 말린적이 있다. 그 버라이어티한 사연들을 모두 풀어 놓을 수는 없지만 대충 요약하자면 그녀 덕분에 대낮 가로수길 한복판에서 자지러질듯 소리를 질러보기도 하고, 한 도시의 모든 병원 응급실을 뒤져보기도 하고, 술에 만취한채 택시를 타서 택시비만 십수만원을 쓴적도 있다. 


누가봐도 확실한 미친연애였다. 그녀는 하루에도 수십번 나의 감정을 바닥에서 꼭대기로 다시 꼭대기에서 바닥으로 요동치게 만들었고 나는 술을 마실때마다 괴롭다고 너무 힘들다고 진저리를 치면서도 그녀를 놓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애꿎은 스마트폰에 대고 대체 나한테 왜이러냐고 내가 뭘 잘못한거냐고 애원인지 분노인지 구분하기 힘든 무엇을 쏟아내고 넋이 나간채 카페에 앉아 커피잔만 바라고 있었다. "이젠 정말 그만..."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 뿐이었다. 여기더 더하면 뭔가 나쁜일이 벌어질것만 같았다. 


그때 어디서 튀어나온건지 알 수없는 나의 또다른 자아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잘해왔잖아. 그래도 너니까 이정도로 잘 버틴거지 그녀에겐 니가 필요해! 그리고 따져보면 그녀도 처음보다는 좀 나아졌잖아! 니가 좀 더 노력하면 그녀도 괜찮아 질거야!" 


대체 뭐가 괜찮다는건지, 그깟 연애때문에 삶이 무너지고 피폐해져가는데! 나는 멍하니 커피잔안 미세하게 흔들리는 커피의 표면을 응시하며 머릿속으로는 그녀와 잘해보라고 나를 위로하고 설득하는 또 다른 자아와 피터지게 싸우고 있었다. 


머릿속에서의 피터지는 싸움 속에서 나의 이성은 이건 연애가 아니라고 그만해야한다며 그녀 때문에 엉망이된 객관적인 사건들을 끄집어내 또 다른 자아에게 집어던졌다. 그러면 어디서 튀어나온건지 알 수 없는 나의 또다른 자아는 능숙한 솜씨로 그것들을 하나하나 안정적으로 받아내고 또 거기에 '사람이 그럴수도 있다', '앞으론 나아질거다',  '진짜 사랑한다면 이겨낼 수 있다' 따위의 말들을 덧붙여 다시 나의 이성에게 던지는 식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나의 이성은 또다른 자아에게 제대로된 한방을 맞추지 못했고 그날도 그렇게 또다른 자아의 승리로 마무리가 되는듯 했다. 하지만 그날은 좀 달랐다. 살면서 한번도 의식해보지 못했던 어떤 존재가 내 머리속에서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 꼴깝 좀 그만 떨어, 니가 무슨 사랑을 위해 모든걸 다바치는 순정남도 아니고, 니도 걔가 이쁘고, 몸매도 좋고, 집도 잘살고, 직업도 좋고 그러니까 같이 있으면 괜히 으쓱하고 놓치기 싫으니까 걔가 별 짓을 다해도 안놓고 있는 거잖아. 니 욕심때문에 안놓는거면서 어디서 피해자 코스프레야!"


천박할정도로 노골적인 비난에 잠시 당황했지만 놀랍게도 비난을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혼란스럽던 머릿속이 띠끌하나 없을 정도로 명쾌해졌다. 


그래, 난 아름답고 성스러운 사랑을 위해 모진 고통을 감내하고 또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아낌없이 희생을 한게 아니라 내 욕심을 포기할 수 없어 여러가지 고통을 감수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만약 그녀의 조건이 조금이라도 달라진다면 나의 태도도 어떻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없이 마음이 편해지고 상쾌함마져 느껴졌다. 내가 뭣때문에 미쳤는지 명확하게 깨닫고 나니 막연히 성스럽고 아름다운 사랑타령에서 벗어나 조금은 천박하고 노골적이지만 객관적인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오... 내가 팜므파탈의 마력에 정신이 나갔던건가!?", "음... 뭐 좀 괴롭긴 했지만 엄청 버라이어티한 경험이었어! 다음에 글로 써봐야지!", "뭐 생각해보면 아직은 좀 더 해볼만하지 않나?" 따위의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는 그녀를 만나도, 정확히는 그녀가 나를 다양한 방법으로 죄책감을 심어주고, 흔들고, 협박을 해도 나는 더이상 괴롭지 않았다. 오히려 때로는 "와... 몇 주전에 저랬으면 혼자 술마시다 소주병 좀 깼겠는데?"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이후 한 6개월쯤 버라이어티하고 기괴한 미친연애를 이어가다 "XX야 우리 이제 그만하자~ 이러다가 진짜 큰일나겠다~"라는 말과 작은 소동과 함께 그녀와의 연애는 진짜 끝이났고 그녀는 몇 해 후 결혼을 했다. 


그녀와의 미친연애를 마치고 나는 습관이 하나 생겼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면 그 이유를 천박하고 노골적인 시각으로 생각해본다. 그러고 나면 대개 몇 가지 이유들이 떠오르게 되는데 때로는 상대의 조건때문이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결핍때문이기도 하고, 때로는 상황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 정확한 이유를 찾아내게 되면 막연히 성스럽고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뽕에 취해 격정적인 감정을 즐길 수는 없지만 은은하게 달달한 안정적인 연애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상대에게 미치게된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으니 상대의 매력을 정확히 응시 할 수 있고 또 나의 결핍을 마주하며 무엇을 채워야하는지 깨달았다. 무엇보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나의 감정을 바라보며 타인의 모순에 좀 더 너그러워 질 수 있었다. 


좋아하는 이유만 제대로 찾아내도 막연하고 혼란스러운 머리속이 명쾌해질 수 있다니! 누구나 한번쯤은 시도해볼만 하지 않을까?


재회플랜&사례집 '이번 연애는 처음이라' 책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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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재회지침서 '다시 유혹 하라'책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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