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3시 택시에서 시인에게 싸인을 받았습니다.새벽3시 택시에서 시인에게 싸인을 받았습니다.

Posted at 2011. 7. 3. 10:00 | Posted in 바닐라로맨스의 일상

 

그동안 바쁘다며 미뤄 놓았던 약속들을 어제 하루에 몽창 몰아넣고 순회를 돌다보니 어느새 5차까지 가버렸더군요;;;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은 하나같이 바쁜척좀 하지 말라지만.. 사람 사는게 다 바쁜것 아니겠습니까... 각설하고 5차가 끝나니 새벽 3시쯤... 되더군요... 무슨 바람이 불어서일까... 갑자기 여친님을 뵙고싶은 마음이 들어 쌍문동 여친님댁에가서 잠시 여친님을 알현한후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멋진 백발을 뒤로 넘기신 택시기사님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있는 제게 말을 건내셨습니다.

택시기사님 : "손님은 취미가 뭐세요?"

바닐라로맨스 : 아.. 예... 요즘은 블로그에 글을 좀 쓰고 있네요~

 

손자뻘쯤 되는 제게 정중한 존대를 해주시는 택시님은 제가 블로그에 글을 쓴다고 하자 갑자기 표정이 밝아지시며 택시기사님께선 20여년간 시를 쓰고 있고 시간이 될때마다 시 낭송회까지 하신다며 저를 반가워 하셨습니다. 그간 택시를 타며, 왕년에 사장님이셨던분, 젊었을때 북파간첩이셨던분 등... 수많은 택시기사님들을 만나봤지만 시를 쓰는 택시기사님은 처음이었습니다.

 

왜 시를 쓰시냐는 저의 질문에

 

시인 택시기사님 : 어느날 문득 가슴한구석에서 소리가 들렸고, 도저히 그 소리를 받아적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라는 답변을 해주셔서 저를 깜짝 놀래키셨습니다.

 

한참을 시에대해 이야기 하시더니 낭송회때 자연의 소리를 내기 위해 몇년간 갈고닦닸다는 새소리를 들려주시겠다며, 휘파람으로 종달새, 뻐꾸기 등의 새소리를 내주셨습니다. 솔직히! 별로 비슷하지는 않았지만 얼핏보아도 연세가 60이 넘으셨을것 같은 분께서 열정적으로 무엇인가에 몰두하는 모습이 너무도 멋졌습니다.

 

그러다 존인께서 쓰신 시중 대표작 하나를 읊어 주시겠다며 제 의사는 묻지 않으시고;;

낭송을 시작하셨습니다.

(제가 바로 받아 적은것이 아니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으로 기억나는 부분만 적어봅니다.)

나는 시인이올시다.(김평길)

 

사람은 시간에 태어나고 시간이 살고 시간에 죽지만

나는 방랑하는 시인이올시다.

 

세상사 끝없는 고통이 눈물을 짓기도하고

작은것에도 행복을 느끼고 배꼽을 잡으며 자지러지게 웃는

나는 시인이올시다.

 

남들은 내게 시를 지으면 밥이나오냐,

시를지으면 술이나오냐고 묻지만

시를 지으면 아~ 무것도 나오지 않아도 마냥 행복하기만한

나는 시인이올시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실제로는 한 5분여가 넘는 시인데... 전부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다만 한가지 놀랬던 점은... 시를 마치 연극의 독백연기를 하듯이 실감나고, 허심탄회하게 낭송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시낭송하면 조용한줄만 알았다고하자 시인 김삿갓을 언급하시면서 시란 감정이 들어갔기 때문에 그냥 조용하게하는것이 다는 아니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집앞에서 내리며 시인 택시기사님께선 직접 지으신 시를 프린트해놓은 종이를 제게 건내며 싸인까지 해주셨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거 사진촬영도 부탁드렸는데, "왜? 집에 걸어두시려구?"라며 혼쾌히 사진을 찍게해주셨습니다. 택시운전을 하시며 시를 짓는다는것도 놀라웠지만 많은 연세에도 왕년에~ 라며 지난 자신의 황금기를 추억하기보다. 자신의 꿈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 시인 택시기사님을 뵙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시인택시기사 김평길 시인님

 

제게 선물해주신 시

 

행복한 눈물 -김평길

사랑하는 딸 성혜

어버이날에 패랭이 꽃을 선물로 가져왔지

화분에 옮겨 심어 놓고 가만히 내려다 보았지.

"야! 예쁘다 패랭이 꽃들" 하는데 패랭이 꽃들이 방실방실 웃고 있는거야!

그런데, 이번에는 딸들이 한 목소리로 아버지, 어머니 건강하세요.

오래오래 사세요. 사랑해요. 하면서 웃어 대는 모습에 내 가슴이 물클하며 감동이 확 밀려오며 눈물이 팍 쏟아지는데, 그 때 내 마음에 "행복한 눈물" 하는 소리를 분명 들었다.

그리고 순간 내 머리 속에 전선이 합선될 때, 행복한 눈물의 글을 쓰려다 못쓴 생각이 팍 떠올랐다.

야! 그렇다  내가 행복한 눈물의 그림은 못 그려도 대신 글로 써서 나누어 드리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는데.

지금 패랭이 꽃을 보면서 순간 꿈속에 환상 중에 본 대로 들은 대로 뺄 것도 없이 보탤 것도 없이 그대로 써서 나누어 드리면 좋겠구나. 참 신기하고 놀라운 그 날 체험한 대로 이렇게 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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